죽은 채용 공고 이론
이상한 채용 시장
최근 이직을 준비하면서 여러 채용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공고는 넘쳤다. 수백 개의 포지션이 올라와 있었고, 스택이 맞는 회사만 추려도 지원할 곳이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지원하면 답장이 없었다. 몇 주를 기다리면 "서류 전형에서 아쉽게도"라는 메일이 왔다. 그러고 나서 그 공고를 다시 검색해보면, 여전히 올라와 있었다.
처음엔 내 탓인 줄 알았다. 이력서가 부족한가, 경험이 맞지 않는가. 그런데 반응 없는 공고들의 패턴이 비슷했다. 2~3주 뒤 탈락 통보, 그 이후에도 계속 열려있는 공고. 어딘가 이 시장이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은 인터넷 이론
마침 오늘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죽은 인터넷 이론(Dead Internet Theory)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이론의 핵심은 단순하다. 인터넷이 더 이상 실제 사람들의 활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콘텐츠의 상당 부분이 봇과 AI가 생성한 것이고, 플랫폼들은 이 빈 활동들로 활성화된 것처럼 보이는 구조를 유지한다는 관찰이다.
처음엔 음모론처럼 들렸다. 그런데 글을 읽다 보면 꽤 구체적인 사례들이 나온다:
- HackerNews가 봇 방어를 위해 ShowHN 게시 정책을 바꿨다
- Reddit에서는 SaaS 홍보 봇 계정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다 적발됐다
- GitHub 오픈소스 프로젝트에서 AI가 PR을 열고 AI가 코드 리뷰를 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 LinkedIn 피드는 AI 생성 콘텐츠로 가득 차 있다
이론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다. 그리고 이 현상의 구조적 원인도 명확하다. 플랫폼은 활성화된 것처럼 보일수록 유리하고, 빈 콘텐츠라도 그 활성화 지표를 채우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다가 문득 채용 플랫폼이 떠올랐다.
죽은 채용 공고 이론
나는 이것을 죽은 채용 공고 이론이라고 부르고 싶다.
채용 플랫폼도 동일한 구조로 작동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채용 의지 없이 올라온 공고, 즉 유령 공고(Ghost Job) 가 플랫폼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그 구조를 플랫폼이 묵인 혹은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령 공고가 얼마나 실재하는지에 대한 수치는 이미 여러 곳에서 나와 있다:
- 미국에서는 LinkedIn 공고의 약 27%가 유령 공고로 추정된다1
- 구인 기업의 40%가 실제 채용 의도 없이 공고를 올린 적 있다고 답했다2
- 한국에서는 채용 담당자의 81%가 유령 공고를 올린 경험이 있다고 인정했다3
- 2019년에는 구인공고 10건당 8건이 실제 채용으로 이어졌지만, 2024년에는 10건당 4건에 불과하다4
공고는 늘었는데 실제 채용은 줄었다. 이 간극이 유령 공고다.
왜 회사는 유령 공고를 올리는가
Fast Company 인터뷰에서 채용 담당자들은 여러 이유를 털어놓는다. 대부분 솔직하다:
인재 풀 사전 수집. 지금 당장 채용하지 않더라도, 좋은 후보자들을 미리 확보해두려는 목적이다. 채용이 급해졌을 때 처음부터 다시 공고를 내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성장하는 회사" 이미지 관리. 채용 공고는 투자자와 경쟁사, 심지어 기존 직원들에게 신호가 된다. 공고가 없는 회사는 축소되거나 정체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현 직원에 대한 압박. 노골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대체 가능성의 신호로 공고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시장 리서치. 지원자들의 희망 연봉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현재 시장에서 어떤 스킬셋을 가진 인재가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공채 규정 충족. 공공기관이나 특정 규정에 따라 내부 채용이 결정되어 있어도 외부 공고를 반드시 올려야 하는 경우.
각각의 이유는 나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총합이 채용 시장 전체를 왜곡하고 있다.
채용 플랫폼은 왜 이걸 방치하는가
여기서 나는 더 구조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이 유령 공고들이 왜 플랫폼에서 걸러지지 않는가.
채용 플랫폼의 수익 모델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공고 수 = 트래픽 = 광고 및 프리미엄 구독 수익. 플랫폼 입장에서 공고가 많을수록 구직자가 더 자주 방문하고, 더 오래 머문다. 이것이 플랫폼의 KPI다.
채용이 실제로 성사됐는지는 플랫폼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채용 성공에 직접 과금하는 모델이 아닌 이상, 유령 공고는 플랫폼에게 손해가 아니라 이익이다. 구직자를 플랫폼으로 계속 끌어들이는 미끼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죽은 인터넷 이론과 같은 구조다. 플랫폼은 활성화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빈 콘텐츠를 필요로 한다. 유령 공고는 채용 플랫폼의 봇 콘텐츠다. 실제 거래가 일어나지 않아도, 거래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시장을 유지한다.
마무리
이 이론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플랫폼이 유령 공고를 의도적으로 방치한다는 내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고, 회사들이 채용 의도를 명확히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구조적 유인이 존재한다는 건 분명하다. 유인이 있는 곳에서는 행동이 따라온다.
구직자의 72%가 취업 준비 과정에서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통계가 있다5. 이 수치가 단순히 취업 경쟁의 어려움만을 반영하는 건지, 아니면 이렇게 구조적으로 응답 자체가 희박한 시장에서 소진되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한 건, 채용 공고의 양이 채용 시장의 활성도를 나타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은 매칭의 질이 아니라 트래픽을 최적화한다. 그 둘이 늘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