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안을 싫어하게 된 건 진짜였을까
2014년까지는 "하와이안 피자 극혐" 같은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냥 피자 메뉴 중 하나였고, 누가 시키면 같이 먹었다. 근데 2015년쯤부터 주변에서, 또 인터넷에서 "피자에 파인애플을 왜 넣냐"는 말이 갑자기 들리기 시작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처음부터 좀 의심스러웠다.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파인애플 피자가 입에 안 맞게 됐을 리는 없는데. 그냥 한때 유행한 놀이 아니었을까. 찾아보니 그 의심이 크게 틀리진 않았다.
이름부터 하와이가 아니다
먼저 좀 김 빠지는 얘기부터 하자. "하와이안"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실 엉성하다. 하와이안 피자는 하와이가 아니라 1962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처음 나왔다. 그리스계 캐나다인 샘 파노풀로스가 만들었고, 이름은 그가 쓰던 파인애플 통조림 브랜드에서 그냥 가져다 붙였다.1 하와이랑은 진짜 아무 상관이 없다.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나폴리랑 별 상관 없는 거랑 비슷하다.2
이 얘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하와이안을 싫어한다"고 할 때 그 대상이 무슨 수백 년 전통 요리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짚고 싶어서다. 환갑 갓 넘긴 가벼운 음식인데, 이걸 두고 진지하게 싸울 일인가 싶기도 하다.
불호라는 말을 뜯어보면
재밌는 건 사람들이 말하는 "불호"의 내용이다. 파인애플 피자가 싫다는 사람들 얘기를 모아 보면, 파인애플 자체가 싫다기보다 "피자에 과일이 올라가는 게 어색하다"는 쪽이 대부분이다.2 못 먹겠다는 게 아니라 "그건 좀 아니지 않냐"는 정도다.
좀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진짜로 싫으면 보기만 해도 거부 반응이 와야 하는데, 여기서의 싫음은 대체로 "먹을 수는 있는데 굳이?" 정도의 온도다. 누가 사주면 맛있게 잘 먹으면서도 "난 하와이안 불호"라고 말하는 사람이 흔하다. 모순 같지만 막상 모순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재밌으니까 하는 거다.
사실 피자 얘기가 아니었다
그럼 왜 하필 2015년쯤이었을까. 나는 하와이안 피자 자체에서 답을 찾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무렵 한국 인터넷에 "호불호로 편 갈라 노는" 형식이 막 자리를 잡고 있었고, 거기에 파인애플 피자가 딸려 들어왔다고 보는 게 맞다.
이 놀이의 원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탕수육 부먹 대 찍먹이 나온다. 떡밥 자체는 훨씬 오래됐지만, 하나의 인터넷 놀이로 박제된 계기가 있다. 2014년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시네마틱을 부먹/찍먹으로 패러디한 영상이 퍼졌고, 한 1년쯤 뒤에 블리자드 코리아가 진짜 성우들을 데려다 공식 패러디 영상을 만들어 화제가 됐다.3 2014년에서 2015년을 지나면서 "사소한 취향으로 진영 나눠 노는" 포맷이 완성된 셈이다.
포맷이 생기면 거기 끼워 넣을 소재가 필요해진다. 하와이안 피자는 그 소재로 딱이었다. 호불호가 적당히 갈리고, 다들 한 번씩은 먹어봤고, 편 가르기 좋았으니까. 그렇게 탕수육처럼 하와이안 피자도 밈이 됐다.2 내가 2015년에 갑자기 그 얘기를 듣기 시작한 건, 파인애플 피자에 무슨 사건이 터져서가 아니라 그걸 가지고 노는 판이 막 깔렸기 때문이었다.
2017년,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기름을 부었다
국내에서 형식이 잡혔다면, 불씨를 키운 건 해외였다. 2017년 2월 21일, 아이슬란드 대통령 구드니 요한네손이 한 고등학교를 찾았다가 학생 질문에 "내가 법을 만들 수 있다면 피자에 파인애플 올리는 걸 금지하고 싶다"고 농담했다.4
이게 전 세계로 퍼졌다. 캐나다 총리 트뤼도까지 "나한텐 파인애플이 있다"고 받아칠 정도였고, 결국 대통령이 "그런 법을 만들 권한은 없다"는 해명 성명을 따로 냈다.4 참고로 당시 이 사람 지지율이 97%였다. 그런 대통령의 가벼운 농담 한마디가 국제 뉴스가 됐다는 것만 봐도, 이 주제가 이미 "진지하게 싸우는 척하며 노는" 밈으로 충분히 익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화제는 한국 커뮤니티랑 미디어로도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실제로 한국에서 이 단어들의 검색이 바닥에서 솟구치는 것도 딱 이 다음 달부터인데, 그건 뒤에서 그래프로 확인한다.
유튜브랑 민초가 쐐기를 박았다
확실하게 굳어진 건 2020년 전후다. 유튜버 과나가 하와이안 피자의 캐나다 기원을 풀어준 영상이 화제가 됐고, 이탈리아 사람한테 파인애플 피자를 먹이고 반응을 보는 식의 영상이 쏟아졌다.15 이 무렵엔 언론조차 하와이안 피자를 민트초코와 묶어서 "호불호 논쟁의 양대산맥", "온라인 놀잇거리"라고 대놓고 불렀다.5
여기에 민트초코 붐이 겹쳤다. 2020-2021년 사이 배스킨라빈스 민초가 품절나고, BTS와 백종원이 예능에서 부먹/찍먹·파인애플 피자·민초를 차례로 도마에 올리고, 식품업계가 민초 마케팅을 쏟아냈다. 공차는 민트초코 음료를 내놓고 출시 초기 멤버십 기준 하루 1만 잔 가까이 팔았고, GS25 민트초코 케이크는 5~6월 디저트 케이크 매출 3위에 올랐다.6 호불호 놀이가 이 정도 규모로 커지면서 그 단짝인 하와이안 피자도 계속 같이 불려 나왔다. 이쯤 되면 맛 얘기라기보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가볍게 던지는 자기소개에 가깝다.
검색량을 직접 떼어봤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내 2015년 기억이 진짜 맞나 싶었다. 그래서 구글 트렌드로 2004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하와이안 피자"와 "파인애플 피자"를 얼마나 검색했는지 월별로 뽑아봤다.7
결과는 좀 의외였다. 2016년 12월까지는 두 단어 다 사실상 0이다. 2013년 5월에 "하와이안 피자"가 잠깐 튄 적이 있긴 한데 앞뒤가 전부 0이라 그냥 노이즈로 보인다. 내가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고 기억하는 2015년에도 검색량은 바닥이었다.
검색이 0에서 솟아오르는 건 2017년 3월이다.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농담을 던진 게 2017년 2월 21일이니까 딱 그 다음 달이다. 우연이라기엔 타이밍이 너무 잘 맞는다. 이때부터 두 단어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해서, 2018년부터는 20~50대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검색된다.
그럼 내 2015년 기억은 틀린 걸까. 꼭 그렇진 않다. 구글 트렌드는 "검색"을 잡는 거지 커뮤니티나 SNS에서 주고받는 농담까지 잡지는 못한다. 디시나 트위터에서 "파인애플 왜 넣냐"고 노는 건 굳이 검색창에 칠 일이 아니니까. 놀이로 떠돈 건 2015년부터였을 수 있어도, 사람들이 그 단어를 직접 검색창에 친 건 2017년부터라고 보는 게 맞겠다.
제일 재밌는 건 한국에서 "파인애플 피자" 검색이 역대 최고를 찍은 시점이다. 2023년 4월인데, 음식 논쟁 때문이 아니라 〈Pineapple on Pizza〉라는 인디 게임 때문이었다. 스페인 스튜디오가 만든 10분짜리 무료 게임이 스팀에서 터지면서 한국 스트리머들이 줄줄이 플레이했고, 그 바람에 검색이 100까지 튀었다.8 한국인이 "파인애플 피자"를 가장 많이 찾아본 순간이 피자가 아니라 게임이었다는 건, 이게 미움보다는 놀이에 가깝다는 걸 그냥 보여주는 것 같다.
네이버로도 확인해봤다
구글만 보고 끝내긴 아쉬워서 네이버 데이터랩도 떼어봤다. 다만 데이터랩은 2016년 1월부터만 있어서, 핵심인 2015년 구간은 여기선 못 본다.9
네이버에선 그림이 좀 다르게 나온다. "하와이안 피자"가 "파인애플 피자"보다 늘 몇 배씩 높다. 사람들이 피자를 주문하려고 메뉴 이름인 "하와이안 피자"를 검색하는 거지, "파인애플 피자"라는 표현은 그만큼 덜 친다. 2018년 9월에 "하와이안 피자"가 한 번 100까지 튀는데, 앞뒤 한 달씩만 빼면 정상값인 단발 돌출이다. 방송·뉴스·프로모션을 뒤져봐도 계기를 못 찾았고, 결정적으로 같은 달 구글에선 아무 변동이 없다. 한 플랫폼에만, 그것도 한 달만 튀고 흔적이 안 남는 걸 보면 의미 있는 사건이라기보단 네이버 쪽 단발 이상치(혹은 통계 잡음)에 가깝다. 추세 해석엔 영향이 없어서 그래프엔 표시만 해뒀다.
재밌는 건 "파인애플 피자" 쪽이다. 2016년 내내 1.3 언저리에서 잠잠하다가, 2017년 2월에 1.6에서 2.7로, 3월 2.8, 4월 3.6으로 뛴다. 구글에서 0이 솟구친 시점과 똑같다. 아이슬란드 대통령 농담(2월 21일) 직후다. 서로 다른 데이터인데 같은 달을 가리키니, 2017년이 변곡점이었다는 건 꽤 단단해 보인다.
결국 "하와이안 피자"는 원래도 그냥 시켜 먹는 메뉴였고, 호불호 놀이의 연료가 된 건 "파인애플 피자"라는 프레임 쪽이었다. 그리고 그 프레임은 2017년 사건과 함께 떠올랐다.
그래서 한국인은 진짜 싫어할까
정작 숫자는 반대로 나온다. 여러 자료에서 한국인은 하와이안 피자를 오히려 좋아하는 편으로 잡힌다. 호불호가 훨씬 격렬한 쪽은 서양이다. 2019년 YouGov 조사에서 미국인의 24%가 파인애플을 가장 싫어하는 토핑 중 하나로 꼽았는데, 동시에 12%는 제일 좋아하는 토핑 3위 안에 넣었다.1 호주에선 전체 피자 판매의 15%가 하와이안이라는 얘기도 있다.2
유명인들 반응도 그냥 취향 차이라는 걸 보여준다. 백종원은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하고, 고든 램지는 방송에서 피자가 아니라 실수라고 할 정도로 질색한다.510 둘 중 누가 맞고 틀린 게 아니라 그냥 입맛이 다른 거다.
결국 한국에서 "하와이안 싫어"라는 목소리의 크기는 실제로 못 먹는 사람 수랑 잘 안 맞는다. 놀이에 끼는 재미가 그 차이를 만든다. 꼭 못 먹어서가 아니라 한마디 얹는 게 재밌어서 끼는 사람도 많으니까.
그래서, 진짜였을까
처음 가설로 돌아오면, 두 가지 중 하나는 맞고 하나는 살짝 빗나갔다. "들끓던 여론이 미움의 크기라기보단 유행에 가까웠다"는 쪽은 자료가 더 강하게 받쳐준다. 한국인이 "파인애플 피자"를 가장 많이 검색한 순간이 음식이 아니라 게임이었을 정도니까.
다만 "2015년부터"라는 내 기억은 검색량만 놓고 보면 2017년으로 미뤄진다. 포맷이 잡힌 2014~2015년에 커뮤니티에서 떠돌던 농담을 내가 먼저 주워들었고, 사람들이 "파인애플 피자"를 실제로 검색창에 친 건 — 구글이든 네이버든 똑같이 — 아이슬란드 대통령 사건 이후였던 셈이다. 어느 쪽이든 그때 갑자기 커진 건 파인애플을 향한 미움 자체가 아니라, 미움을 입에 올리는 일이 유행이 된 거였다.
물론 그렇다고 다들 속으론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줘도 끝까지 안 먹는 사람 많고, 그 거부감은 진짜다. 다만 그 진짜 불호가 어느 시점에 갑자기 "여론"으로 들끓은 건, 입맛이 그때 변해서가 아니라 그걸 말하는 게 놀이가 됐기 때문이다. 취향은 원래도 거기 있었고, 유행은 그걸 크게 떠들 핑계를 줬을 뿐이다.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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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매거진, "하와이안 피자: 캐나다에서 시작된 달콤한 논쟁거리". 1962년 캐나다 기원과 파인애플 통조림 브랜드에서 따온 이름, 유튜버 과나의 기원 소개 영상, 2019년 YouGov 설문(미국인 12%가 선호 토핑 3위 안, 24%가 비선호 토핑), 한국인은 비교적 선호하는 편이라는 내용을 다룬다. ↩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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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하와이안 피자". 캐나다 기원과 작명 유래, 불호 의견이 대체로 "파인애플은 싫지 않으나 피자와의 조합이 어색하다"는 쪽이라는 점, 호주 피자 판매의 15%가 하와이안이라는 위키백과 인용, 탕수육 부먹/찍먹처럼 인터넷 밈 성격을 가진다는 서술. ↩ ↩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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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부먹 vs 찍먹". 2014년 WoW 시네마틱 부먹/찍먹 패러디 유행과, 약 1년 뒤 블리자드 코리아의 공식 성우 패러디 영상으로 사소한 취향 논쟁이 인터넷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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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shington Post, "Icelandic president admits he does not have the legal authority to ban pineapple on pizza" (2017.02) 및 UPI(2017.02.21). 아이슬란드 대통령의 발언, 당시 지지율 97%, 트뤼도의 반응, 해명 성명까지의 경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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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탈리아에선 범죄 수준이라는 이 피자, 저는 '극호'입니다만" (2020.11). 하와이안 피자가 민트초코와 함께 호불호 논쟁의 "양대산맥"이자 온라인 밈·놀잇거리로 소비된다는 분석, 고든 램지의 파인애플 피자 혹평 영상, 이탈리아인 리액션 콘텐츠 정리. ↩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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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민초단'이여, 봉기하라" (2020.12) 및 디지털투데이, "'개취의 논쟁'이 쏘아 올린 작은공 '민트초코'" (2021.08). 배스킨라빈스 민초 품절, 공차 민트초코 음료 출시 초기 하루 약 1만 잔 판매, GS25 민트초코 케이크 디저트 케이크 매출 3위, BTS·백종원 예능의 부먹/찍먹·파인애플 피자·민초 언급 등 2020~2021년 호불호 놀이의 상업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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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트렌드, 대한민국·웹 검색, 2004년 1월
2026년 6월 월별 데이터(2026.06.18 조회). 그래프의 0100은 절대 검색량이 아니라 기간 내 최고점 대비 상대지수다. 검색은 2016년까지 사실상 0, 2017년 3월부터 상승, 2023년 4월 "파인애플 피자"가 100으로 최고점. ↩ -
〈Pineapple on Pizza〉, 스페인 Majorariatto 제작, 2023년 3월 29일 출시한 무료 인디 게임. 출시 일주일 만에 스팀 리뷰 약 1만 건·긍정 98%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고 한국 스트리머들이 대거 플레이했다. 나무위키 "Pineapple on pizza", 디스이즈게임(2023.04)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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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데이터랩 검색어트렌드, PC+모바일 합계, 2016년 1월~2026년 5월 월간(2026.06.18 조회). 두 검색어를 공통 최고점(2018년 9월 "하와이안 피자"=100) 기준으로 정규화한 상대지수. "파인애플 피자"는 2016년 약 1.3에서 2017년 2월 2.7로 상승. 참고로 2018년 9월의 단발 급등은 같은 달 구글 트렌드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아, 네이버 한정 이상치(또는 통계 잡음)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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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호불호". 백종원은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하고 고든 램지는 싫어한다는 유명인 취향 대비 등, 호불호가 옳고 그름이 아닌 취향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사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