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는 "취향"이 아니다

요즘 자꾸 나오는 "taste"

AI로 코딩을 하게 되면서 "taste"라는 단어가 부쩍 자주 보인다. 올해 2월에 Paul Graham이 "AI 시대엔 taste가 더 중요해진다, 누구나 뭐든 만들 수 있게 되면 결국 무엇을 만들기로 선택하느냐가 차이를 만든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고, OpenAI의 Greg Brockman은 거기에 "taste는 새로운 핵심 역량"이라고 짧게 덧붙였다.1 Scott Young도 비슷한 시기에 AI가 잘하는 건 문제를 푸는 것이지 풀 만한 문제를 고르는 게 아니라며, 그 분별력을 taste라고 불렀다.2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이게 한국어로 넘어오면서 거의 예외 없이 "취향"으로 번역된다는 점이다. 처음에 누군가 AI 번역기를 돌렸고, 그 결과가 커뮤니티에 올라왔고, 다들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굳어진 것 같다.

나는 이게 틀린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말한 taste는 취향이 아니다

Scott Young은 taste를 이렇게 정의한다. 좋은 아이디어와 나쁜 아이디어를, 가능성 있는 방향과 막다른 길을, 우아한 해법과 그냥 돌아가기만 하는 해법을 가려내는 능력.2 핵심 단어는 "가려내는"이다. 선호가 아니라 분별이다.

Paul Graham은 한참 전인 2002년에 이 점을 아예 정면으로 다뤘다. 그가 쓴 「Taste for Makers」는 "taste는 그냥 개인 취향일 뿐"이라는 통념을 반박하는 글이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다. 만약 taste가 순전히 개인 취향이라면, 모두의 taste는 이미 완벽하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거고, 그게 전부니까. 그런데 디자인을 계속하다 보면 안목이 바뀐다. 그리고 더 잘하게 됐다는 걸 스스로 안다. 그렇다면 예전의 taste는 단지 다른 게 아니라 더 나빴던 것이다. taste가 틀릴 수 없다는 가정은 거기서 무너진다.3

반대로 취향은 어떤가. 나는 민트초코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싫어한다. 여기엔 더 나음도 못함도 없다. "네 취향은 틀렸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취향은 정의상 틀릴 수가 없다.

그러니까 taste와 취향은 비슷한 말이 아니라 정반대 말이다. 한쪽은 틀릴 수 있고 길러지는 능력이고, 다른 쪽은 틀릴 수 없고 그냥 가지고 있는 성향이다.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이게 최근에 갑자기 생긴 헷갈림이 아니다. taste라는 말이 "맛"에서 "미적 판단"으로 넘어간 건 18세기 미학의 일이고, 그때부터 이미 같은 고민이 있었다. 애초에 미각에서 단어를 빌려온 이유 자체가, 음식 맛을 보고 좋고 나쁨을 가리듯 작품의 좋고 나쁨을 가린다는 뜻이었다.

David Hume은 1757년에 쓴 「취향의 표준에 관하여(Of the Standard of Taste)」에서, 아름다움은 대상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주관적인 입장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향에는 표준이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판단은 다른 판단보다 분명히 낫고, 그 더 나은 판단은 충분히 단련된 감식자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4 주관성의 대명사로 불리는 흄조차, taste에는 더 나음과 못함이 있다고 못 박았다.

칸트는 1790년 『판단력 비판』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결정적인 구분을 한다. 쾌적한 것아름다운 것을 나눈 것이다. 쾌적한 것에 대해서는 "나한테는 좋아"라고 말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게 바로 취향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것에 대해 "나한테만 아름다워"라고 물러서면 우스워진다고 칸트는 말한다. 단지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아름답다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5 taste, 즉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선호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주장한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하나 드러난다. 영어 taste 한 단어 안에는 이 두 뜻이 다 들어 있다. 칸트가 갈라놓은 "쾌적함(=취향)"과 "아름다움(=안목)"이 한 단어에 뭉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권 사람들은 맥락으로 둘을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어는 운 좋게도 둘을 가르는 단어를 따로 가지고 있다. 번역자가 할 일은 맥락에 맞는 쪽을 고르는 것뿐이다. 그리고 "취향"이라는 번역은, 칸트가 애써 갈라놓은 둘 중에서 정확히 틀린 쪽을 골랐다.


코드에서의 taste

10년 전, 2016년 TED 인터뷰에서 Linus Torvalds도 같은 단어를 썼다. 진행자가 "good taste"가 뭐냐고 묻자, 그는 연결 리스트에서 노드를 삭제하는 코드를 두 버전으로 보여준다. 대학에서 흔히 가르치는 버전은 첫 번째 노드를 지울 때를 위한 별도의 if 분기가 필요하다. 반면 포인터의 포인터를 쓰는 버전은 그 특수 케이스가 사라지고 일반 케이스 안으로 흡수된다. 그는 후자를 good taste라고 불렀다. 같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봐서, 특수 케이스를 일반 케이스로 바꿔 없애버리는 눈. 그게 좋은 코드라는 것이다.6

이건 "탭이냐 스페이스냐", "세미콜론을 붙이냐 마냐" 같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더 나은 쪽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걸 알아보는 훈련된 눈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Graham이 「Taste for Makers」에서 좋은 디자인은 단순하고, 어렵고, 다시 만드는 것이라고 줄줄이 나열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3 취향이라면 나열할 규칙 자체가 없다. 그냥 좋아하면 그만이니까.


그럼 뭐라고 옮겨야 하나

취향(趣向)은 글자 그대로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다. 개인의 선호이고, 틀릴 수 없다. 칸트가 말한 "쾌적한 것"에 정확히 대응한다.

내가 보기에 가장 가까운 단어는 안목(眼目)이다.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눈. 단련되고, 그래서 틀릴 수도 있고 나아질 수도 있다. 맥락에 따라 심미안이나 감식안도 후보가 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공통점은 분명하다. 길러지는 능력이고, 틀릴 수 있다는 것. taste가 가진 그 두 성질이 그대로 살아 있다.


왜 이게 중요하냐면

번역어 하나가 사고를 바꾼다. "AI 시대엔 취향을 길러라"는 말은 가만히 들어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취향은 기르는 게 아니다. 그냥 가지고 있는 거다. 반면 "안목을 길러라"는 자연스럽고, 무엇보다 정확하다.

AI가 그럴듯한 코드를 무한히 뽑아내는 시대에 남는 차별점은, 그중에서 좋은 걸 알아보는 훈련된 눈이다. 그건 틀릴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걸 "취향"이라고 부르는 순간,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조용히 사라진다. 취향은 틀릴 수 없으니까. 그리고 틀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단어의 핵심이었다.

이전 글들에서 나는 AI가 구현을 빨리 해주는 만큼 남는 시간에 본질을 다시 고민하자고 썼다. 그 본질을 가리키는 단어부터 제대로 부르고 싶다. 우리가 길러야 하는 건 취향이 아니라 안목이다.


Footnotes

  1. 2026년 2월, Paul Graham이 X에 올린 글과 Greg Brockman의 반응. AI 시대에 "무엇을 만들지 고르는 능력"으로서의 taste가 핵심 역량이 된다는 주장이 널리 공유됐다. 관련 정리: Artem, "You're Wrong About Taste", 2026.

  2. Scott H. Young, "How to Learn Taste", 2026. taste를 "좋은 것과 나쁜 것, 가능성 있는 방향과 막다른 길을 가려내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이것이 대체로 암묵지(tacit knowledge)라 책으로 가르치기 어렵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수된다고 본다. 2

  3. Paul Graham, "Taste for Makers", 2002. taste가 단순한 개인 취향이라는 통념을 반박하고, 좋은 디자인의 공통된 성질(단순함, 어려움, 재설계 등)을 나열한다. 마지막 문장은 "위대한 작업의 비결은 까다로운 taste와 그것을 충족시킬 능력"이라는 취지다. 2

  4. David Hume, "Of the Standard of Taste", Four Dissertations, 1757. 아름다움이 주관적 감정이라는 입장에서 출발하면서도, 단련된 감식자의 판단을 통해 "취향의 표준"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미적 판단은 다른 판단보다 낫다.

  5. Immanuel Kant, Kritik der Urteilskraft(판단력 비판), 1790. "쾌적한 것(das Angenehme)"과 "아름다운 것(das Schöne)"을 구분한다. 쾌적함은 "나에게 좋다"로 끝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개인 선호를 넘어선 보편적 타당성을 주장한다.

  6. Linus Torvalds, TED 2016 인터뷰 (약 14:10). 연결 리스트에서 노드를 삭제하는 두 구현을 비교하며 "good taste"를 설명한다. 코드로 풀어 쓴 설명: Manuel Kirchner, "linked-list-good-taste".